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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声人語

2017년 10월 12일 천성인어(天声人語), 英雄ゲバラの子

by 곰돌이풉 2017.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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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사히신문 사설인 천성인어(天声人語) 2017년 10월 12일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의역이 있습니다.

英雄ゲバラの子 영웅 체게바라의 아들.

 自ら望んで広島を訪ね、花を捧げ、被爆者を病院に見舞う。
 본인이 직접 방문하고 싶다고 희망하면서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조화를 바치고, 피폭자를 병원에서 문방했다.

先週公開された映画「エルネスト」は、キューバ革命の立役者チェ・ゲバラが1959年夏、被爆地を歩く場面で幕を開ける
지난주에 공개된 영화 '에르네스토'는 쿠바 혁명의 주역인 체게바라가 1959년 여름 피폭지를 걷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日本キューバ合作映画の公開前、来日したゲバラの長男カミーロ・ゲバラさん(55)に会った。
일본, 쿠바 합작 영화 개봉 전, 일본에 온 체게바라의 장남 카밀로 게바라 씨를 만났다. 

ひいでた額、強いまなざし。有名な父の肖像写真そっくりである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머리, 강한 눈빛. 유명한 아버지의 초상화와 흡사하다. 

-引いた額(ひたい):직역하면 당겨진 머리인데, 카밀로 게바라 사진을 보니 탈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당겨진'의 뜻은 '머리 없는 부분이 당겨진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머리라고 번역했다.
-肖像写真(しょうぞうしゃしん):초상화, 인물사진.

▼父がボリビアで処刑された時は5歳だった。鮮明な思い出はないものの、キューバでは建国の英雄として教わる。教室で照れくさい思いをしたという。
아버지가 볼리비아에서 처형되었을 때 그는 5살이었다. 선명한 추억은 없지만, 쿠바에서는 건국의 영웅으로 가르치고 있다. 교실에서는 겸연쩍었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照れくさい(てれくさい):겸연쩍다, 멋쩍다.

しかし目をほかの中南米の国々に向ければ、ゲバラの評価は割れる。「闘争に殉じた勇士」「凶悪な殺人者」。いまでも好悪の感情をかき立てる特殊な存在である
하지만 중남미의 시선으로 보자면, 체게바라의 평가는 이와 다르다. '투쟁에서 순직한 용사', '흉악한 살인자'. 지금도 호불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존재이다.

▼ゲバラはアルゼンチンに生まれ、医学を修めるが、南米各地を旅して深刻な格差に驚く。皆が医療と教育が与えられる社会を夢見て、闘争に身を投じる。広島訪問はキューバ革命の直後だった
체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했으나, 남미 각지를 여행하면서 심각한 격차에 놀란다. 모두가 의료와 교육이 주어지는 사회를 꿈꾸며 투쟁에 몸을 던진다. 히로시마를 방문한 것은 쿠바혁명 직후의 일이었다.

▼「こんなひどい目に遭わされて、どうして怒らないんだ」。平和記念資料館で惨劇の数々を見たゲバラはそんな疑問を口にした。米国の支援を受けたキューバ政府軍と戦った闘士にすれば、米国に従うばかりの日本政府が歯がゆかったのだろう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고 왜 화를 내지 않는거야?". 평화기념박물관에서 이 참극의 여러 모습들을 본 체게바라는 그런 의문을 입에 담았다. 미국 지원을 받은 쿠바정부군과 싸운 투사라는 입장에서, 미국에 따를 뿐인 일본정부가 답답했을 것이다.

-歯痒い(歯がゆい):성에 차지 않다. 속이 타다. 안타깝다. 답답하다.

▼ゲバラが39歳で没して今月で50年。「父を失って暮らしは楽じゃなかった。生活のためベネズエラで働いた時期もあります」とカミーロさん。もしゲバラが50代まで生きていたら、眉間(みけん)にこんな憂愁をたたえただろうかと表情に見入った。
체게바라가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이번 10월을 기준으로 50년째. "아버지를 잃고 생활은 편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베네수엘라에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라고 카밀로 씨는 이야기했다. 만약 체게바라가 50대까지 살아있었다면, 미간에 이런 우수가 차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그의 표정에 빠져들었다.

-憂愁(ゆうしゅう)をたたえる: 우수에 차다

번역: 곰돌이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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