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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필, 4년제 지방국립대 일어일문학과 졸업, 학점 평균4.0, JLPT N1, 일본 교환학생, 토익700정도, 한자3급, 한국사3급, 관광통역안내사는 면접에서 탈락'
본인의 대학교 시절 스펙이다.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그동안 전공인 일본어로 먹고 살기에 대한 리뷰를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
얘기가 길어지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외국어는 절대 Main이 될 수가 없고, 어디까지나 활용하면 좋은 Sub일 뿐이다.'
외국어 전공자여, 회사에서 아첨을 어떻게든 하거나, 다른 사람을 헐뜯고 위로 올라가서 무시 못받는 위치가 되거나 그 업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배워라. 가장 마지막 방법이 합리적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통의 대한민국 회사는 그 긴 기간동안 당신을 회사에 남겨놓지 않겠지만.
화이팅! 썰 시작한다.
처음에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일본어를 배우면 연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보여서'였다. 고등학생 당시 본인은 게임원화가를 하고 싶어 안달난 입장이었는데, 그림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고 인서울권에 들어갈 성적도 없었다. 대학을 위해 재수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고른 것이 '일본어'였다. 한일감정이 안좋다고 하지만 언제나 있었던 문제이고, 문화, 경제 심지어 정치까지 엮이지 않는게 없지 않나. 뭐라도 할 수 있겠지.
군대에서 조리병을 하면서 JLPT N2 단어장을 2년동안 외웠다. 그러다보니, 이제 일본어에 대해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 이왕 배워가는 김에 더 심도있게 공부하고 싶고, 자아실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취업을 어느 방향으로 할 지에 대해서는 군대에 있을 때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군대에서 일본어를 활용하려고 하니 일본 자위대와의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래서 항공, 관광 분야 중 어디를 갈까... 하고, 대학교에 복학해서도 고민은 계속됐다.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가이드'라는 직업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제2의 언어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안내, 통솔, 그 나라의 문화에 젖어들게끔 유도하는 직업이 얼마나 멋있게 보이던지. 더군다나 좋아하는 나라를 주기적으로 다녀오고 돈도 벌 수 있다. 고향에서 일본 친구들을 안내하는 봉사활동도 300시간이나 해왔으니,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환상은 머지 않아 무너진다. 관광통역안내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가이드'의 실상은 월 50만원 정도의 기본급에 여행사와 연계되어 있는 '어떤 식당'이나 '어떤 면세점'을 방문해줘야 그 이상의 수입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가이드 공부를 하면서 현직자 분들이 '남자는 가이드 하면 안돼'라는 말의 참뜻을 그 때 이해하게 됐다. (그 영향 탓일까, 관광통역안내사는 필기는 붙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
방향을 조금 틀었다. 여행사 가이드가 아닌 '여행사 직원'으로. 그러면 조금 더 먹고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경쟁률 50대 1을 뚫고 들어간 서울시청역 도보 5분 이내의 여행사. 신입 월급이 150만 원이었다. 하지만 인턴으로 시작하니 그 중 20프로가 떼이고, 세금 떼이고 회사가 더 떼가는 것을 모두 제외해 보니 내 돈에 남는 것은 '월급 98만 원'. 그래, 돈은 그렇다고 치자. 당시 여행사에서 나는 온갖 인격모독적인 단어를 듣고 살았다. 회사 맨 앞자리는 인턴, 뒷자리는 사원과 대리, 그 뒤는 팀장. 이런 미친 데스크 구조에서는 업무시간에 카톡조차 할 수 없었고, 심지어 내가 무슨 타이핑하는지도 감시했었다. 일 못한다고 종이쪼가리들을 얼굴에 던지고, 온갖 욕설에(회사에서 '10X끼'라는 단어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걸 아무도 모르는 척 하는 사내 분위기. 이걸 계기로 여행업에는 발을 떼기로 했다. 이런 비상식적인 수당, 공급이 과하니 사람을 말도 안되게 막 대하는 분위기, 레드오션인 시장.
그 다음은 제조업 일본영업팀에 지원했고, 운 좋게 정식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월급은 실수령 무려 200만 원! 경쟁률이 전 회사만큼 높지도 않은데 이 월급을 받다니. 이정도면 전직장 대리급인데, 나 이 돈 받아도 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부장급이 많고 사원급이 적은 역미라미드 구조 회사에 들어온 탓인지, 이전에 적대적매수를 당해본 회사라서 그런지, 사내에서의 생존게임은 그야말로 피가 말렸다. 1년 정도를 일했고 중국에도 장기출장가고 산전수전 다 겪였지만 내가 살아남기는 힘들다고 판단했고, 결국 나왔다.
세번째는 정말 특이한 업계에 들어왔다. 기상회사인데, 본사가 일본이고 한국지사에서 근무. 여기서의 회사 근무가 가장 길었다. B2B 기상영업을 하러 온갖 해운사, 항공사, 한국전력공사 등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회사의 모습을 관찰했다. 영업, 마케팅전략, 협업이란 것에 대해 많이 배웠고 회사가 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그 회사의 직원으로서 얻는 것이 많았다. 왜 이런 방향으로 모든 직원이 움직여야 하고, 단기적/ 장기적으로 비즈니스를 위해 취하는 전략, 직책마다 다양한 사람을 투입하는 전략, 회사가 인건비 및 교육비 절감을 위해 취하는 전략(...) 등. 고민도 많이 하고 야근도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 조금 더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그만뒀다. 업무적으로는 그렇고, 인간관계적으로는 내 상사를 욕되게 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인정받고 급격하게 진급하는 상태였는데,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나왔다.
얘기가 길어지네. 다음은 2부에서 하도록 하겠다. 일본어 전공자가 언어로 살아남기가 이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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