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우리시대의 궁궐, 청와대'를 읽고 그 글귀를 적은 포스팅입니다.
p.15
조선시대 궁궐의 뒤뜰에서 오늘날의 청와대로. 서울에는 조선시대 궁궐들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다섯 궁궐 중 경복궁은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고(이 책 나온 연도가 2006년이다. 참고 바람), 창덕궁은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경운궁과 창경궁은 그 모습이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여전히 궁궐로서의 기품을 갖추고 있다. 경희궁은 전각들을 거의 잃어버리고 정전(正殿), 숭정전(崇正殿)과 그 부근의 건물들 몇 채만 남아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 궁궐들은 살아있는 궁궐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그곳에는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집이 집으로써의 역할을 하려면 주인이 살면서 관리하고 가꿔야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지은 궁궐을 옛날 궁궐이란 뜻으로 고궁(古宮)이라고 한다.
p.16
청와대가 역사 속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다. 고려는 개국할 때부터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아 개경(開京), 서경(西京), 동경(東京)의 삼경(三京)으로 삼고 있다. 서경은 지금의 평양이고 동경은 지금의 경주다. 이후 문종때인 1068년에 동경이 수도인 개성과 너무 멀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동경대신 지금의 서울 청와대 자리를 남경(南京)으로 해 새로운 삼경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후 남경은 양주로 격하되었다.
이후 다시 청와대 자리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의 건국 때다. 태조 이성계는 재위 3년째인 1394년에 새 수도 건설을 위한 임시기구로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만들었다.
p.17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뒤 조선은 급격히 쇠잔해갔다. 일제는 1910년 10월 남산 왜성대의 총독부 청사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조선건국이래 우리나라 중심지였던 경복궁 내를 대지로 정하고 1916년~1926년 10월 조선총독부 청사를 준공했다. 10년에 걸친 공사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해방후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70년동안 사용했다가, 미군정때 약 2년 3개월간 하지 장군 관저로 사용,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원래 이름을 살려 경무대로 부르게 했다. 1960년 4월 19일 4.19혁명 후 이승만 정부 부정부패 이미지가 있어서,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이름을 변경했다.
p.38
청와대 지붕모양.
이들 장식 기와는 대부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악하고 나쁜 기운이 궁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장식기와 이외에 해태와 드므 등도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벽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드므: 커다란 물동이는 드므라는 것으로, 옛날에 궁궐에서 화기를 억제하는 상징물이다. 불의 신이 불을 놓으러 왔다가 드므에 자기 모습을 보고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2006년 6월부터 드므의 물에 수초를 넣었다. 드므의 물은 원래 거울 역할을 해야하는데 아마도 그 기능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게 한 것 같다.
by 곰돌이풉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글귀: 인생의 기술(공병호)-2 (0) | 2017.09.12 |
---|---|
책글귀: 인생의 기술(공병호)-1 (0) | 2017.09.11 |
책글귀: 사람과 사람사이 (0) | 2017.09.05 |
책글귀: 좁쌀 한알 (0) | 2017.09.01 |
책글귀: 이희호 자서전 동행-2 (0) | 2017.08.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