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최고위원,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격돌…86그룹 내 갈등 심화 조짐
2024년 9월 22일 – 더불어민주당의 김민석 최고위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격렬한 갈등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모두 80년대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정계에 진입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최근의 충돌은 그들의 정치적 신념과 과거의 동지 관계를 다시금 시험대에 올렸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임 전 비서실장의 “통일하지 말자.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발언에 김 최고위원이 강하게 반박하면서 시작되었다. 김 최고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직격하며 임 전 실장의 주장을 비판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논쟁을 넘어, 두 사람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신념을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인지도를 쌓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석패했다. 그러나 그는 4년 후 15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0년에는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2002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며 정치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반면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맡아 운동권의 스타로 떠올랐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힘입어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되어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두 사람은 15대 총선 최연소 당선자(김 최고위원, 32세)와 16대 총선 최연소 당선자(임 전 실장, 34세)로서 비슷한 길을 걸어왔지만, 2002년 대선에서의 이적 사건 이후 갈라서게 된다.
특히 김 최고위원이 정몽준 후보 측 '국민통합21'로 이적한 뒤, 임 전 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민의를 배반하는 철새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은 김 최고위원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주었고, 그 후 그는 지지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2008년에는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며 정치적 부활을 노렸지만, 2010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등 험난한 길을 걸었다.
이와 달리 임 전 실장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2012년 당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민주당의 주류로 남았다. 2017년에는 문재인 정부의 첫 비서실장으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으며 대북정책의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현재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임 전 실장은 지난 4월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원외에 머물고 있는 반면, 김 최고위원은 최근 두 차례 총선에서 연이어 당선되어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상황은 김 최고위원이 임 전 실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배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86그룹 내에서 분화의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과거 한솥밥을 먹던 동지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면서, 이들의 대립이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북정책과 같은 민감한 이슈를 놓고 86그룹 내에서의 이견이 표출됨에 따라, 이번 논쟁이 향후 정치적 지형 변화로 이어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김민석과 임종석 간의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 대립을 넘어 한국 정치의 복잡한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두 사람의 정치적 행보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86그룹 내의 분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논쟁은 향후 한국 정치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