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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책글귀: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by 곰돌이풉 2017.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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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를 보고 그 글귀를 적은 포스팅입니다.

 현대사회에서 히틀러는 매우 두드러진 인물이다. 정치가이자, 장군이자, 범죄자인 그는 나폴레옹과 스탈린, 마오쩌둥, 사담후세인 모두를 뛰어넘는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떠돌이는 어떻게 독일국민을 사로잡고 히틀러의 매력은 카리스마, 히틀러 본인만 놓고 본다면 엽서 그림을 그리던 보잘것없는 화가. 독일은 히틀러고 히틀러는 독일이다. 

p.34
 유대인은 독일인보다 우수했다. 유대인에게는 농지경작이 허가되지 않았다. 불이익과 잠재적인 박해의 위협은 유대인에게 유연성과 신속성, 적응력을 길러주었다. 금융업은 유대인의 독점영역이라고 한다.

p.36
 독일인은 유대인을 이방인으로 또는 적으로 생각했다.

p.45
 1889년 4월 20일,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했다. 

p.62
 군대는 히틀러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p.65
 히틀러는 유대인이 독일에 치명적인 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p.100
 란츠베르크 수감생활은 히틀러에게 휴식기를 제공했다. 그는 감옥에서 자신의 정치인생과 독일의 역사를 분석했고 그 결과 정치적인 책이 한권 탄생하게 된다.

p.112
 1924년 12월 21일, 일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p.183
 히틀러는 1933년 7월 14일, 유대인에게서 귀화를 통해 얻은 시민권과 국가공무원직을 박탈하고 민족과 국가의 적의 재산을 몰수하고 유대인 예술가 출판인이 비유대매체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했다.

p.208
 1933년, 3만 7천명의 유대인이 독일을 떠났고, 1934년 2만 3천명, 1935년 2만 천명, 1936년 2만 5천명, 1937년 2만 3천명. 5년동안 14만명의 유대인이 독일을 떠났다.

p.256
 전쟁준비. 1937년 가을, 독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력의 길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첫번째 제물로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삼았다.

p.351
 아돌프 히틀러는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삶을 제거하는 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p.384
 독일군은 오로지 모스크바정복을 목표로 전력을 소진, 독일의 공세는 중단되었다. 히틀러는 이미 8월에 겨울까지 계속될수 있다고 말했지만 독일군에게는 겨울을 버텨낼만한 장비가 없었다. 
 독일병사들이 영하 30도의 지독한 추위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동안 소련(러시아)의 육군은 300km 넓은 전선에서 반격했다. 스탈린은 더 많은 군인과 전쟁물자를 전투에 투입, 소련의 물량적 우위가 승패의 행방을 결정했다. 

p.388
 미국에 대한 히틀러의 어리석은 것은 선전포고였다.

p.389
 독일 육군 병사들에게 광적인 저항명령을 내렸다. 독일군은 소련 포로들과 주민들로부터 겨울 옷가지를 가차없이 빼앗으라고 명령했고, 병사들은 그런 지시가 하달되기도 전에 러시아인들에게서 보온이 잘되는 두툼한 외투와 장화를 약탈하고 있었다.


by 곰돌이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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